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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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가난의 수레바퀴 속 마약거래로 내몰린 청년들…현실 속 ‘화란’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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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계우리통합상담소
작성일24-01-02 17:10 조회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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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지난달 30일 아들이 구속된 서울남부구치소의 접견실을 방문했다. 전현진 기자
정씨는 지난달 30일 아들이 구속된 서울남부구치소의 접견실을 방문했다. 전현진 기자

#1 접견

지난달 30일, 구치소 접견이 있던 날이었다. 아들 이씨(31)가 구속된 지 세 달 가까이 됐다. 지방에 사는 정씨는 전날부터 이틀 연달아 접견 일정을 잡아뒀다. 서울 모처에서 지내며 지하철을 타고 오갔다. 낯설던 구치소 가는 길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날 오후 2시쯤 구치소 앞에서 정씨와 만났다. 접견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정씨의 삶은 평생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오후 2시 20분, 접견 시간이 되자 정씨가 급히 일어났다. 보관함에 휴대전화를 넣고는 마른 손으로 얼굴을 계속 훔쳤다.

“괜찮죠?”

정씨가 기자를 보고 물었다. 울상 짓던 표정이 사라지고 엄마의 얼굴이 됐다. 운 적 없는 얼굴로 애써 바꾼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러 접견실로 향했다.

접견은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의자에 힘 없이 주저 앉은 정씨는 이내 몸을 들썩였다.

“내가 미안한데, 오히려 자기가 미안하다네요.”

뭔가 적을 게 있을까 가지러 가져간 종이는 비어 있었다.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모자가 주고 받은 말은 많지 않았다. 밥 잘 먹냐, 지낼 만하냐. 늘 같은 안부를 다시 물었다. 아들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씨는 차마 발이 안 떼어지는 듯 한동안 대기실에 앉아 있다 구치소를 나섰다. 4대째 천주교인인 정씨는 주머니에 항상 넣어둔 묵주를 꽉 쥐었다.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이어가던 중 정씨는 ‘어머나’ 놀라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오후 4시 5분이었다. 접견 예약은 매일 오후 4시에 할 수 있는데 1~2분 만에 예약이 찬다. 서둘렀지만 이미 예약이 종료됐다.

“해줄 수 있는 게 접견 가주는 것 밖에 없는데….” 정씨는 다시 울상이 되었다.

#2 과거

정씨는 아들의 일이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며 가슴을 쥐어 뜯었다. ‘과거’의 다른 이름은 가난과 불행이었다.

시작은 남편의 바람이었다. 약 30년 전 친정 아버지 장례식날, 남편은 외도 상대와 여행을 떠났다. 자식 때문에 폭력도 참고 살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혼을 결심했다. 정씨는 집 안에서 아들, 딸과 문을 열지 않고 버텼고, 남편은 밖에서 우유통 안으로 불을 질렀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남편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렇게 두 살 난 아들과 다섯 살 딸, 세 가족의 삶이 시작됐다.

정씨는 막노동, 식당, 가정부 등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으면 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인근 시장에서 노점도 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부끄러워 않고 학교가 끝나면 뛰어왔다. 새벽마다 도시락을 만들어 남매만 두고 일하러 나갔다. 집에 오면 손 대지 않은 도시락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엄마와 같이 먹겠다는 걸까, 입맛이 없었던 걸까. 말 없이 도시락을 바라 본 날도 많았다.

가난은 한 군데 머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버스도 닿지 않는 시골마을의 빈집에도 살았고, 개농장의 컨테이너나, 공동화장실을 쓰는 단칸방을 전전했다. 습기와 한기, 구더기와 곰팡이가 함께 였다. 친지의 집에서 신세를 지다 쫓겨났을 때는 바닷가에서 남매와 부둥켜 안고 죽어버리려고도 했다.

아들은 중학생이 되자 엄마를 돕겠다며 면허를 따고 배달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자동차가 오토바이 뒤를 들이 받는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왼쪽 다리에 심을 박는 큰 수술을 받았고 장애로 남았다. 입원이 길어지면서 아들은 결국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사고와 가난이 겹치는 불행 속에서도 아들은 속 한 번 썩이지 않는 착하고 속 깊은 자식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몸이 상해 극심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게 된 엄마를 돌보고 아르바이트도 쉬지 않았다.

공부를 곧 잘 해 대학에 들어간 딸도 엄마가 아프니 수업을 야간으로 조정하고 낮에는 구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딸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남자 쪽은 결혼을 거부했고, 딸은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비혼모가 된 딸과 손녀까지 함께 살게 됐다. 아들은 모아둔 돈으로 누나의 제왕절개 수술과 산후조리 비용을 냈다.

딸은 얼마 후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딸도 자신처럼 가정폭력을 겪었다. 괴로워 하지 말고 친정으로 오라고 이야기했었다. 4년 전 어버이날, 딸은 꽃을 사들고 손녀와 찾아왔다.

“사랑하고 감사해요.” 딸의 마지막 말이었다. 딸은 이틀 뒤 홀로 목숨을 끊었다.

#3 범행

정씨 아들 이씨가 몰고 온 파란색 승용차에 말레이시아 여성이 필로폰 약 5kg이 든 검은 봉지 2개를 넣고 있다. 이씨는 당시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했다. 영등포경찰서 제공
정씨 아들 이씨가 몰고 온 파란색 승용차에 말레이시아 여성이 필로폰 약 5kg이 든 검은 봉지 2개를 넣고 있다. 이씨는 당시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했다. 영등포경찰서 제공

시간이 흘러도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9월 정씨는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쓰러졌다. 아들 이씨가 구속돼 재판을 받을 것이란 얘기였다. 이씨의 혐의는 간단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선(마약 공급책)의 지시로 지난 8월 13일 밤, 서울 양천구의 한 빌라에서 필로폰 약 5㎏이 든 비닐봉지 2개를 차에 실어 온 혐의다. 상선은 이씨에게 물건을 싣고 내릴 때는 ‘잠깐 차에서 내려서 담배 피러 다녀오라’고 지시했고, 누군가 차에 물건을 실었다. 이씨는 이 물건이 필로폰인줄 몰랐다고 했다.

이씨는 지인에게서 파란색 승용차를 빌려 서울로 올라왔다. 목적지엔 말레이시아 여성 2명이 묵고 있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의 마약 조직의 지시를 받아 한국에 온 뒤 거처를 정하고 대량의 필로폰을 전달 받았다. 필로폰은 나무 도마 안에 숨겨져 택배를 통해 전달됐다. 이들은 필로폰을 소분한 뒤, 중국과 한국 마약 조직에 물건을 건네줬다.

경찰이 단순 투약자를 적발해 수사하던 중 이들 말레이시아 여성까지 추적해내며 국제적인 마약 밀매가 드러났다. 체포된 여성들을 통해 필로폰 약 20kg을 압수했다. 엄청난 성과였다.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지난 1월부터 올해 세 차례 출입국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 여성은 “지난 1월 27일 인천공항에 입국하면서 공항 직원 유니폼을 입은 남자 직원 2명이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해 입국 심사대를 거치지 않고 심사장 밖으로 나갔다”고 진술했다. 수사는 마약 밀수에 세관원이 개입됐는지까지 확대됐다. 

이씨도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이씨의 말과 달리 그가 한국 조직 총책의 측근이며 필로폰 유통에 깊이 개입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수사 기간 중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이씨는 현재 혐의만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자신이 서울을 오가는 통행료와 기름값을 포함해 1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씨는 이 일을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 찾았다고 했다. 이런 곳에 고액 단기 알바로 포장한 불법적인 일들이 많다고 한다. 마약 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조직도 이런 곳에서 사람을 고용한다. 정확히 어떤 일인지 알려주지 않지만 대부분 무언가(마약·돈)를 운반하고 전달하는 일이다.

수많은 20~30대가 이런 일에 뛰어든다. 이들은 무언가 이상해도 잠깐 눈을 감고 돈을 받는 쪽을 택했다. 유흥비를 구하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해결하기 위해, 생계를 위해. 범죄 조직은 이런 이들을 손쉽게 구해 쓰고 버린다. 이들은 운반책, 수거책이란 이름으로 가장 먼저 수사에 노출되고 중한 처벌을 받는다.

과연 이씨는 마약 밀매 사건의 핵심적 인물이었을까, 그저 마약 조직이 손쉽게 찾아 쓰고 버린 소모품이었을까. 어느 쪽이건 그가 이런 일에 뛰어든 이유의 상당 부분은 가난과 불행이다.

어머니 정씨는 아들이 어떤 혐의로 언제 구속되었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아들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했고 왜 돈이 필요했을지는 너무 잘 알았다.

백해룡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과 형사들이 지난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나무도마에 은닉해 밀반입된 필로폰을 공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백해룡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과 형사들이 지난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나무도마에 은닉해 밀반입된 필로폰을 공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4 이유

정씨와 아들은 평생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좋은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씨가 류마티스 등을 치료하는 데 매달 50만~60만원이 든다. 수급자 의료 급여를 적용한 비용이다. 아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면 어머니의 수급자 자격이 상실될 수 있다. 의료비가 크게 늘어나 결국 전보다 더 못한 형편이 될 게 뻔했다.

벌이가 괜찮은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배달, 택배, 공사장 일용직 등 ‘몸 쓰는 일’인데, 아들 이씨는 다리를 다쳐 쉽지 않다. 빚도 많다. 딸이 죽은 뒤 딸과 결혼했던 남자와 소송을 벌였고, 손녀의 양육권도 확보해야 했다. 재판 비용만 수천만원이 넘었고 모두 빚으로 남았다.

근면·성실·정직 같은 말은 가난 앞에 공허했다. 정직하게 일해선 가난을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게 정씨와 그의 아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그때 비극적인 희소식이 들렸다. 손녀에게 피어난 재능이었다. 초등학생인 손녀는 성당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저도 모르게 재능을 꽃피웠다.

지역 영재로도 뽑혔던 손녀는 올해 특성화학교 입시를 치렀다.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 어린 손녀는 음악을 하는 데 많은 돈이 든다는 걸 모르지 않았고, 할머니와 삼촌의 가난도 잘 알았다. 평소에도 무엇 하나 사달라 하지 않고 ‘얘기만 잘 들어줘도 돼’라고 하는 속 깊은 손녀였다.

그런 손녀가 나중에 포기하더라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손녀의 입학 시험장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주위엔 잘 차려입은 부모들이 자녀를 마중왔다. 자신의 모습이 더 초라했다. 손녀가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걱정됐다. 떨어져도, 붙어도 걱정이 됐다. 손녀는 결국 합격했다. 정씨는 합격 후에도 쉬지 않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연습하는 손녀를 보며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들 이씨의 고민도 많아졌을 테다.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그는 조카의 재능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 조카의 재능은 기적인가 비극인가. 그는 어떤 일을 해야 조카의 꿈을 키우고, 어머니를 돌보며,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하고 어두운 터널을 더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이씨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남부지법.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씨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남부지법. 경향신문 자료사진

#5 미래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정씨는 말했다. 아들이 범죄에 손을 댄 것은 못난 어미를 만나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아들에겐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내가 애들을 지켜주는 줄 알았는데, 지금보니 아이들이 나를 지켜주는 거였어요. 손녀도 없고 아들도 없었다면 이렇게 살아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정씨는 손녀에게 삼촌이 수감 중이란 사실을 말해주지 못했다. 가족이라고는 할머니와 삼촌만 남은 손녀가 희망을 놓아버릴까 겁이 난다고 했다.

이씨는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지난 첫 공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반성문을 냈다. “앞으로 범죄 없이 어머니, 조카와 정직하게 살겠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부에 징역 5년과 추징금 5억원을 요청했다. 1심 선고는 오는 20일로 예정됐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가난은 여전히 3대 가족 앞에 무시무시한 아**를 벌린채 기다라고 있을테다.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 젊으니 시간도 미래도 있지 않냐고 다짐해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정씨는 희망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런 일을 계속 겪는 게 무언가 의미가 있겠지요. 저도 아들도 배우고 깨달아가는 게 있을 거예요.” 정씨는 힘겹게 말했다.

정씨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조심스레 물었다. “아들하고 풀빵 장사라도 하면서 정직하게 살아야죠. 아들한테만 짐 지우지 않고 착실하게 살도록 해야죠.” 정씨는 묵주를 다시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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